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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을 채워준 진짜 사랑, 트라우마를 극복한 "예측 가능함"이라는 다정한 배려

by mars-0 2026. 6. 9.

 [마음 건강] 예측 가능함이라는 배려, 내가 정의하는 가장 다정한 사랑에 대하여

어릴 적 TV를 틀면 온통 사랑을 주제로 한 드라마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곤 했다. 남녀 주인공이 첫눈에 반해 불꽃 같은 감정을 태우고, 서로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극적인 이야기들. 그 시절의 나는 턱을 괴고 화면을 바라보며 나직이 생각하곤 했다. '대체 사랑이 뭘까? 저렇게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격정적인 감정만이 진짜 사랑인 걸까?' 소설과 미디어가 주입한 사랑의 환상은 실체가 없는 구름처럼 늘 마음 위를 둥둥 떠다녔다.


시간이 흘러 서른 살의 궤도에 진입했을 때, 내 주변은 하나둘 결혼 소식을 전하는 친구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결혼을 앞둔 친구들은 저마다 비슷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우리는 정말 운명같아"라고 말하는 듯한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열하며 자신들의 관계를 '운명적 사랑'이라는 로맨틱한 단어로 포장했다. 그러면서 은연중에 다른 부부들의 결합은 그저 조건이 맞아서 맺어진, '필요에 의한 충족 관계'로 치부해 버리기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내 마음속에는 다시 한번 오랜 질문이 고개를 들었다. '정말 사랑은 저들이 말하는 운명 같은 이끌림뿐일까? 그렇다면 저 불꽃이 꺼진 뒤의 관계는 사랑이 아닌 걸까?' 사랑이라는 단어의 무게와 정의를 두고 다시금 혼란스러워질 때쯤, 심리 상담을 하는 한 친구가 나에게 묵직한 조언을 건넸다.
"사람들은 대개 서로의 깊은 '결핍'이 채워질 때, 그것을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느껴."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속에 얹혀 있던 수많은 질문들이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수긍할 만한, 본질을 꿰뚫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마다 마음속에 크고 작은 빈방을 하나씩 품고 살아간다. 그 방은 유년 시절의 상처일 수도 있고, 살아가며 겪은 결핍일 수도 있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타나 그 어둡고 텅 빈 방에 딱 맞는 크기의 온기를 채워줄 때, 인간은 비로소 거대한 유대감과 충만함을 느끼며 그것을 '운명'이라 부르는 것이었다.


#트라우마의 틈새를 채운 '예측 가능성'과 '편안함'
친구의 그 조언이 진리였음을 깨닫게 된 것은, 더 많은 시간이 흐른 뒤 '당신의 이상형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하는 내 목소리를 내 귀로 직접 들었을 때였다. 거창하고 화려한 조건을 나열할 줄 알았던 내 입에서는 뜻밖에도 아주 소박하고도 단단한 단어들이 흘러나왔다. 나에게 사랑은 '예측 가능성'이야.
이렇게 뚜렷한 기준을 갖게 된 데에는 내 삶을 뒤흔들었던 커다란 아픔이 자리하고 있다. 나는 과거에 사랑하는 가족을 갑작스럽게 세상에서 먼저 떠나보낸 가슴 시린 경험이 있다. 어떠한 예고도 없이,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찾아온 이별은 내 삶에 깊은 트라우마의 흔적을 남겼다. 그날 이후로 내 안에는 이유 없는 불안감이 불쑥불쑥 소리낼 수도 없는 울음으로 훅 올라올 때가 있었다. 소중한 존재가 언제 내 곁을 떠날지 모른다는 공포, 통제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은 늘 나를 전전긍긍하게 만들었다.


그런 나에게 진짜 사랑이란. 가슴 뛰는 로맨스나 화려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내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자신의 일상을 투명하게 공유해 주는 것, "몇 시쯤 도착해", "지금은 누구를 만나고 있어"라며 나의 세계를 예측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상대방의 태도였다. 그 예측 가능함이 날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 편안함이 나에겐 사랑이다.
불안의 파도가 치는 나를 위해 언제나 그 자리에 단단히 서 있어 주는 그 '예측 가능함'이야말로, 상대방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깊고 사려 깊은 '배려'이자 사랑의 증거였다. 상대의 배려 덕분에 내 삶에 단단한 '안정감'이 찾아왔고, 격식을 차리거나 나를 꾸며내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수용되는 완벽한 '편안함'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잔잔하게 흐르는 호수처럼 평온한 마음에 머무는 것, 그것이 내 결핍을 채워준 진짜 사랑의 형태였다.


# 한 단어 속에 담긴 수만 가지의 우주
'사랑'이라는 글자는 단 두 글자, 하나의 단어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십억 명의 사람들에게 

"당신에게 사랑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단 한 명도 똑같은 대답을 내놓지 않을 것이다.
 * 누군가에게 사랑은 열정적인 불꽃일 수 있고,
 * 누군가에게는 서로의 부족함을 메워주는 필요의 충족일 수 있으며,
 *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의리일지도 모른다.
 * 그리고 상실의 트라우마가 있는 나에겐, 불안을 잠재워주는 다정한 예측 가능성이다.


타인의 눈에는 그저 평범하고 사소해 보이는 배려일지라도, 그것이 누군가의 깊은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열쇠가 된다면 그것보다 위대한 사랑은 없다. 각자가 살아온 삶의 궤적과 상처, 그리고 결핍에 따라 사랑은 저마다의 색깔과 무늬로 옷을 갈아입는다. 그렇기에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흔하게 쓰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신비롭고 경이로운 단어임이 틀림없다. 당신이 믿고 있는 사랑의 정의는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가? 혹시 타인이 만들어놓은 기준이나 미디어가 보여주는 환상에 내 관계를 억지로 끼워 맞추며 서운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중요한 것은 나에게만 유독 따뜻하게 느껴지는 그 고유한 감정의 결을 찾아내는 것이다.


내 안의 불안을 잠재워주고 나를 가장 나답게 살아가게 하는 편안함. 

나는 오늘도 내 삶을 안전하게 감싸 안아주는 이 예측 가능한 다정함 속에서 깊은 감사를 배운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수많은 이들에게도 조용히 묻고 싶어진다.


"지금 당신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사랑은, 어떤 정의를 품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