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한 번 마음을 열면 온 정성을 다해 내 모든 것을 내어주곤 했습니다. 오랜 시간 오직 그 한 사람만을 바라보며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붓는 것. 그건 상대를 향한 제 마음이 그만큼 순수했고, 진심이었으며, 사랑의 크기가 컸다는 증거였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 사람이 ‘가까이해서는 안 될 위험한 존재’ 임을 깨닫고 겨우 거리를 두고 났을 때 밀려오는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제 손으로 관계의 끈을 잘라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쏟아부은 제 아까운 시간, 갈아 넣은 에너지, 눈부셨던 추억들이 한순간에 부정당한 것만 같아 가슴이 미어지곤 합니다.
마치 내 영혼의 일부가 뜯겨 나간 듯한 극심한 허탈감과 상실감 속에서, 저는 깨어진 관계의 잔해를 바라보며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온전히 회복하기 위한 단계별 마음 처방전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저와같이 모든걸 내어주고도 도리어 힘든 그동안의 내가 낸 마음이 이용 당했다는 사실에 마음의 정돈이 필요한 분들을 위해)
1. 상실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나의 애도 시스템 가동)
내 모든 것을 주었던 대상과 멀어지는 것은, 단순한 인연의 단절을 넘어 내 삶의 거대한 축이 무너지는 일’과 같았습니다. 이때 제 뇌가 느끼는 고통은 신체적인 부상을 입었을 때와 다름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 자신을 다그치지 않기: "왜 진작 알아보지 못했을까", "왜 아직도 미련하게 아파할까"라며 스스로를 원망하거나 억지로 빨리 잊으려고 애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충분히 아파해야 끝이 난다: 쏟아부은 에너지가 컸던 만큼, 그것을 거두어들이는 데도 반드시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합니다. 눈물이 나면 울고, 억울하면 낙서를 하거나 소리를 지르며, 지금 겪는 무기력과 슬픔이 내 마음이 스스로를 치료하기 위해 면역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임을 받아들입니다.
2. 과거의 추억과 '나의 진심'을 분리하기
상대가 지뿐에 모르는 진심을 연기하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그 친구과 함께했던 아름다운 추억과 그동안 노력했던 제 과거의 시간마저 모두 ''가벼운 가짜' 처럼 느껴지곤 했습니다. "내가 바보같이 속았구나"라는 생각에 엄청난 수치심이 밀려오기도 했죠. 하지만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상대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해서, 그 친구를 대했던 나의 진심과 사랑의 가치까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 그 시간 동안 누군가를 그토록 깊이 사랑하고 헌신했던 것은 온전히 나의 아름다운 능력이었습니다. 상대가 그 귀한 마음을 담을 만한 그릇이 되지 못해 흘러넘쳐 버린 것뿐입니다. 과거의 시간과 추억을 미워하며 나 자신까지 갉아먹지 않으려 합니다. "그 사람은 자격이 없었지만, 내 진심은 그 순간 참 아름다웠다"라며 나의 과거를 안아주어야 비로소 회복이 시작됩니다.
3. 분산되었던 에너지의 과녁을 '나'에게로 돌리기
그동안 제 삶의 중심이자 에너지의 종착지는 항상 '그 친구'였었습니다. 하루의 모든 생각과 감정의 안테나가 그 친구를 향해 있었으니, 그 대상이 사라진 자리에 거대한 빈 구멍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제는 그 거대했던 에너지의 방향을 오롯이 '나 자신'에게로 꺾으려 합니다.
내 몸의 감각 깨우기: 마음이 아플 때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 가장 빠른 치료제였습니다. 땀이 날 때까지 걷거나, 좋아하는 음식을 정성스럽게 차려 먹거나,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며 오직 '지금 내 몸의 느낌'에 집중해 봅니다.
작은 성취로 내 공간 채우기: 거창한 목표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방 청소하기, 일기 쓰기, 보고 싶었던 영화 보기 등 아주 사소한 일들을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하면서, 그 사람이 헤집고 간 내 삶의 영역을 나의 취향과 온기로 다시 채워나가는 것입니다.
4. '올인(All-in)'하는 사랑의 습관에서 '나를 위한 안전장치' 마련하기
이번의 아픈 경험은 저에게 너무나 가혹했지만, 앞으로 더 안전하고 단단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값진 예방주사가 되어줄 것입니다. 다음번에 또 귀한 인연이 찾아온다면, 저를 지키기 위해 이것만큼은 꼭 지키겠다고 다짐합니다.
100%가 아닌 30%부터 시작하기: 처음부터 내 패를 다 보여주고 방어벽을 허무는 대신, 상대가 내 진심을 받을 만한 믿음직한 사람인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지켜볼 것입니다.
마음의 방을 여러 개 만들기: 내 인생이라는 집의 모든 방을 한 사람에게 통째로 내어주면, 그 사람이 떠났을 때 집 전체가 폐가가 되고 맙니다. 우정의 방, 취미의 방, 가족의 방,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온전한 나만의 방을 따로 만들어 에너지를 분산시켜야 합니다.
💡 글을 마치며
당신은 잘못하지 않았습니다. 절친이던 연인이던 상대를 깊이 사랑한 것이 죄가 될 수는 없으니까요. 다만 다음번에는 그 지극한 사랑과 에너지를 '남이 아닌 나 자신'에게 먼저 듬뿍 채워주려 합니다. 내가 가장 단단하고 행복할 때, 비로소 그 어떤 바람이 불어와도 흔들리지 않는 진짜 안전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테니까요. 상처 입은 마음들의 밤이 조금씩 밝아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