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타인에게 하는 말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폭로한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구사하는 말과 태도에는 그 사람의 인격뿐만 아니라, 현재 그가 처한 심리적 상태와 깊은 내면의 상처가 고스란히 배어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흔히 누군가가 타인을 향해 염려나 평가를 던질 때, 그것이 온전히 '상대방'을 향한 분석이라고 착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심리는 생각보다 훨씬 교묘하고 투명합니다. 타인을 향해 쉽게 뱉는 날카로운 말, 혹은 자신을 과도하게 포장하는 화려한 수사들은 사실 상대방이 아닌 '자기 자신의 지독한 결핍과 비참함'을 세상에 알리는 소리 없는 비명에 가깝습니다.
# 겉으로는 완벽해 보였던 관계의 틈새를 목격하다.
주변을 둘러보면 누구보다 타인의 장점을 잘 발견하고, 늘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파하는 것처럼 보여 닮고 싶은 사람이 한 명쯤 있습니다. 사람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그 넓은 그릇을 존경하게 되고, 나 역시 내 삶의 가장 취약한 부분과 깊은 속내를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으며 깊은 신뢰를 쌓아가곤 합니다. 내 모든 속을 보여주어도 안전할 것 같은 단단한 사람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람의 입과 행동에서 어딘가 모순된 일들이 포착되기 시작합니다. 정작 본인은 남들에게 말 못 할 큰 고민으로 홀로 속앓이를 하면서도, 입버릇처럼 "나는 천운이 따르는 사람이다", "너무 운명적인 일이야' 라며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포장합니다. 반면, 주변 사람들의 불행이나 헤어짐, 실패 소식을 들을 때면 대놓고 비난하지는 않지만, 세상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가볍게 동정하곤 합니다. "쯧쯧, 걔는 항상 운이 없더라..."라는 식의 뉘앙스로 은근히 타인의 삶을 깎아내리는 그 위선적인 도리도리를 목격한 순간, 마음속에서 경고음이 울립니다. '이 사람에게 내 속을 다 보여주면, 언젠가 내가 힘들 때 내 이야기도 저렇게 안타까운 척 도마 위에 올려 가십거리로 소비하겠구나.' 그렇게 믿었던 상대를 향한 마음의 문이 확 닫혀버리게 됩니다.
# 천운이라 포장된 가혹한 비밀의 실체
나중에야 알게 된 그 숨겨진 비밀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처절한 비극이었습니다. 지인이 "운명적 사랑"이자 "비혼주의를 넘는 사랑"이라고 그렇게도 말하던 결혼은, 사실 지독한 계산과 기만으로 시작되였다는걸요.
원래 결혼 생각이 없었다던 남편은 오래 사귄 여자와 결혼을 준비 중이였고, 관계가 깨졌으나 예약했던 예식장에 지인을 임신시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겨우 '다른 사람과 함꼐 하려던 결혼식에 위약금을 아끼기 위한 대타로 급조된 그런 시작이이었던 셈입니다. 이 잔혹한 진실을 알게 되었 때, 비로소 지인이 왜 그토록 "나는 천운을 타고났다"고 부르짖었는지, 그리고 왜 타인의 불행을 향해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운이 없다"고 혀를 찼는지 조금은 수수께끼가 풀렸습니다.
# 나르시시즘적 방어 기제: 비참함을 가리기 위한 가짜 성벽
그 지인은 자신의 결혼 생활의 시작이 얼마나 취약하고 비참했는지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남이 예약해 둔 식장의 위약금을 아끼기 위해 임신이라는 수단으로 채워진 그 과거는, 평생을 따라다니는 유령 같은 수치심이었을 겁니다. 그 거대하고 끔찍한 불행을 맨정신으로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자아가 완전히 붕괴해 버리기에, 뇌는 극단적인
'나르시시즘적 방어 기제(Narcissistic Defense Mechanism)'를 선택한 것입니다. 나르시시즘적 방어 기제는 내면의 나약함과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겉으로 비정상적인 우월감과 자기 과장을 뿜어내는 심리 현상입니다. 그는 자신의 비극을 "하늘이 도운 천운"으로 왜곡하여 포장함으로써 스스로에게 가짜 면죄부를 주었습니다. 동시에 주변 사람들을 "운 없는 불쌍한 존재"로 격하 시켰습니다. 남들을 나보다 아래로 끊어내려야만, 비로소 내 비참한 현실이 조금은 나아 보이고 내가 '대타'가 아닌 '특별한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가 남들을 향해 안타까운 척 고개를 흔들며 던졌던 동정의 말들은, 상대방을 향한 순수한 염려가 아니라 "제발 나를 불쌍한 여자로 보지 마, 난 너희보다 특별하고 천운을 타고난 사람이야" 라고 스스로에게 부르짖는 처절한 자기 최면이었던 것입니다.
# 타인의 아픔을 다루는 행동 양식과 인간의 본성
인간관계에서 누군가의 본모습을 보고 싶다면 그가 나에게 하는 말보다, 그가 '제3자의 불행'을 어떻게 다루고 말하는지를 유심히 보아야 합니다. 진짜 내면이 단단하고 평온한 사람은 타인의 불행 앞에 굳이 고개를 흔들며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슬픔을 공감하거나 말을 아끼며 상대의 품위를 지켜줍니다. 반면, 자신의 삶이 결핍으로 가득 차 있고 상처로 곪아 터진 사람일수록 타인의 약점을 가볍게 들추고 평가하며 아는 체를 합니다. 타인의 불행은 그들에게 가장 손쉽게 자존감을 채울 수 있는 정서적 제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타인의 장점을 보며 고상한 척하지만, 뒤에서는 은근한 도리도리로 남을 깎아내리는 행동 양식은 전형적인 '정서적 포식자'의 모습입니다. 이런 이들은 타인의 비밀과 아픔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처를 가릴 방패막이로 삼습니다. 그렇기에 그 사람의 비밀을 알고 난 후 마음의 문을 확 닫아걸고 안전거리를 확보한 것은, 내 삶을 지키기 위한 가장 지혜롭고 영리한 생존 본능입니다.
누군가의 화려한 자화상과 타인을 향한 거침없는 평가에 휘둘리지 마십시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장 크게 떠들고,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모습을 타인에게서 찾아내어 은연중에 깎아내립니다. 타인을 향한 시선을 거꾸로 돌려보면, 그곳에는 언제나 상처받아 웅크리고 있는 가여운 본성이 서 있습니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의 '말' 뒤에 숨겨진 진짜 '상태'를 읽어내는 눈을 가질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소음에 흔들리지 않고 내 삶의 평화를 온전히 지켜낼 수 있습니다.